미국 조지아의 현대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9월 4일 헬리콥터까지 띄운 대규모 단속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475명이 구금됐고 그중 상당수가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ESTA 비자로 입국한 하청업체 직원들이었다. ESTA는 관광이나 세미나 참석 정도만 허용한다. 일을 할 수 있는 비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현장에 나온 이유가 있다.
공기가 빠듯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한 세액 공제를 받으려면 미국 내에서 생산한 배터리로 전기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2025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해 왔다. 그런데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으려면 경험 많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고, 속도가 중요한 상황에서 한국 하청업체 인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 “빨리빨리”가 통하고, 갑작스러운 변경도 큰 소리 내지 않고 맞춰준다. 이런 유연성과 속도는 미국 현지 인력과 비교할 때 큰 강점이었다. 그래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 인력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ESTA로 일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취업 비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H-1B, E-2 같은 정식 비자가 있다. 하지만 장벽이 높다. 연간 발급 수량에 제한이 있고 심사는 몇 달씩 걸리며,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이후 H-1B(전문직 취업 비자) 발급률은 10% 이하로 떨어졌다. 단순 기술자나 현장 노동자는 사실상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 하청업체가 E-2 투자 비자를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장에서 억울함이 터져 나온다. 미국이 와서 투자하라 해놓고, 정작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치의 논리가 숨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다. 무역 적자를 줄이고, 자국 공장을 다시 돌리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 기업의 투자가 반갑기는 하지만 공사판에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이 대거 일하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셈이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단속 요청이 지역 의원에게서 먼저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기업이 지역 주민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불만을 대변한 것이다.
사실 미국 공사 현장에 미국인을 쓰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첫째, 소통 문제다. 한국 하청업체는 발주처 요구에 즉각 부응한다. 추가 요청이나 변경 사항에도 큰 잡음 없이 대응한다. 반면 미국 업체와 일하면 합의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고 예산을 더 요구하기도 한다.
둘째, 속도다.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입장에서 미국인의 속도는 느리다. 공기가 늘어나면 비용도 늘고 세액 공제 문제도 걸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번에 단속을 당한 공장이 조 바이든 정부 시절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으로 홍보된 곳이라는 점이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조지아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이는 조지아주 역사상 가장 큰 경제 개발 사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풍경이 달라졌다. 같은 공장이 바이든 정부에서는 ‘환영받는 손님’이었는데,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단속 대상’으로 둔갑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이민 단속을 밀어붙이는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미국 투자에는 경제 논리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 논리까지 봐야 한다. 사업 계획을 짤 때는 환율이나 원가 구조뿐 아니라, 워싱턴의 권력 지형과 정책 기조도 함께 살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