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변화에 당당히 맞서기
[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변화에 당당히 맞서기
  • 김진혁
  • 승인 2026.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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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AI가 당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카림 라카니(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두려움은 늘 변화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벌써 우리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두려움이 사실보다 상상을 먹고 자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요즘 인공지능(AI)을 둘러싼 풍경이 꼭 그렇다. 데이터를 다루고, 글을 쓰고, 코드를 짜는 사람들은 저마다 “내 자리는 언제쯤 기계에게 넘어갈까?” 자문한다. 흥미롭게도 이 물음에 절박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들은 사회의 저변층이 아닌 상류층이다. 지난 수십 년 경제적 호황을 누려온 전문직들이 변화 앞에서 크게 술렁인다. 오래 누린 것은 당연한 권리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예감은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 무언가를 유린당한 느낌이 아닐까?

문제는 이 사적인 불안이 사적인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권력자, 언론인,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의 정서로 스며든다. 지난달 한 소형 리서치 회사가 “AI가 경제를 추락시킬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자 주식시장이 출렁였다는 일화는 상징적이다. 실제로 AI를 써본 사람들은 오히려 조심스러운 낙관을 품고 있다. AI는 나의 대체제가 아닌 경쟁력을 극대화해줄 강력한 무기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이 필요할 때 기계가 대신하는 과학물이 아닌가?

 두려움은 낯선 감정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겪었다. 대량생산된 옷감이 저렴해지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나아졌지만, 손끝으로 실을 자아내던 방직공과 직조공들에게는 진정한 상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큰 틀에서 인류에게 이로운 흐름이라 해도, 그 흐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개인에게는 생계와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그러니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 두려움이 사실을 가리는 안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진짜 문제다.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는 역사가 이미 증언한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몽골군이 성벽 너머로 던져 넣은 시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병은 삽시간에 퍼졌고, 유럽인 2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을 더 큰 재앙으로 몰아넣은 것은 병균 자체가 아니라 병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공포에 질린 이들은 고향과 일터를 버리고 떠돌다가 오히려 병을 더 멀리 퍼뜨렸다. 흑사병을 옮긴다는 미신 때문에 죄 없는 개와 고양이를 죽이자 쥐가 오히려 늘어났고, ‘땅 위의 공기’가 감염원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하수구로 숨어들었다가 더 빨리 감염되었다. 두려움은 이상행동을 낳고, 그 재앙을 앞당긴다.

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

레바논 출신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 앞에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다. AI 앞에서 우리가 떠는 것도 실은 AI 그 자체보다 ‘내가 이 변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기 예언에 가깝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조직은 혁신을 미루다가 정작 준비할 시간을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개인은 배움을 멈추고 방어에만 몰두한다. 우리도 변화를 밀어내려다 변화에 대응할 역량 자체를 갉아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두려움을 아예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용기라고 부른다면, 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가미카제 특공대야말로 가장 용맹한 이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 있는 군인이 아니라 판단력을 잃은 이들이었을 뿐이다. 진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한 걸음을 내딛는 행동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말처럼,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커져 돌아온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비로소 용기를 낼 자격을 갖는다.

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

변화 앞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서는 첫째, 두려움의 정체를 정확히 이름 붙이자.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조차 모른 채 막연한 불안에 휩쓸리기보다는 “내 직무 중 어떤 부분이, 어떤 시점에, 어떤 대안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로 구체화해야 한다. 두려움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과제다.

둘째, 개인의 불안과 인류 전체의 흐름을 구분하는 눈이 필요하다. 기술 혁신은 대체로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풍요를 늘려왔다. 문제는 그 혜택이 골고루 나뉘지 않는다는 데 있을 뿐이다. 실제로 필요한 대응 대신 막연한 저항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야 한다.

셋째, 상상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가올 변화를 과거의 틀로 상상하며 진짜 기술 혁명 앞에서 늘 빈약했다.

넷째, 변화의 시대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이 필요하다. 눈앞의 적보다 먼저 자기 안의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을 지탱한 것은 현실 너머의 신념이다.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앞세우고 찾아온다. 그러나 역사는 두려움은 재앙이 된 순간, 두려움을 딛고 용기로 나아간 순간을 동시에 보여준다.
 

막연한 공포에 휘둘리는 대신, 두려움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과제로 바꾸는 것. 그것이 변화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대응이자 백배 천배로 커지는 용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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