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면 최적화·기준 검토·특허까지 ‘에이전틱 AI 워크플로’ 수행
설계와 현장 안전 연결한 ‘Site-Agent’…강재 ‘설계된 솔루션’
강구조 연구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 포스코의 지원으로 2025년 7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수행된 ‘흙막이벽체 CIP용 Built-Up H빔 현장적용 연구’는 열간압연 H형강(RH300·RH350)을 대체하는 최적 제작형강(BH빔)의 경제성과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더 눈여겨볼 대목은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이다. 단면 최적화에서 기준 검토, 특허 청구항 작성, 나아가 현장 안전까지 단계별 산출물을 만드는 ‘에이전틱 AI(Agentic AI) 워크플로’를 적용했다.
◆ 적용성 성과 요약 : 더 가볍고, 더 강하고, 더 싸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흙막이 말뚝은 굴착 방향 토압을 주로 받는 일방향 휨 부재인데, 정방형 RH형강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약축에도 강재가 많이 배분돼 있다. 연구팀은 천공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대각길이를 핵심 제약으로 삼아 천공경 D500~D630 범위에서 RH300·RH350을 대체할 최적 BH단면 8종을 도출했다.
대표적으로 RH300 대체용 BH-420×230은 단위중량을 기존의 77% 수준으로 낮추면서 강축 단면2차모멘트는 1.44배, 단면계수는 103%를 확보했다. RH350 대응 BH-460×255도 중량을 32% 줄이면서 강축 강성은 15% 높였다. BH빔은 톤당 단가가 약 10~15% 높지만 사용 강재량이 적어 미터당 가격은 오히려 RH형강보다 낮다.
실제 적용을 위한 검증도 진행됐다. 국내 대형 건설사의 토목·건축 2개 현장은 VE 전환설계를 거쳐 설계가 확정돼 올해 말 시공을 앞두고 있다. 리모델링 5개 현장 비교설계에서는 빔 자재비가 평균 21% 절감됐으며, 응력과 수평변위는 기존 설계와 같은 기준을 충족했다. 수지지역 현장에서는 필요한 구간에만 강성이 큰 단면을 적용하는 변단면 설계를 통해 역레이커를 없애 해당 구간 공사비를 22% 줄였다.
한국강구조학회 자문을 거친 설계기준·시방 개정안과 BH빔 제작시방서, MIDAS GeoXD의 BH 단면 DB 등록(2026년 1월)으로 실무 적용 기반도 갖췄다.
◆ 성과 뒤의 엔진 : 에이전틱 AI 워크플로
이번 연구에 적용한 워크플로는 모든 과제를 개념 이해, 수학적 정식화, 코드 구현, 검증, 문서화의 다섯 단계로 심화시키고 단계마다 산출물을 남기는 방식이다.
단면 최적화, 특허, 기준 검토, 최적화 알고리즘이라는 네 개 트랙이 같은 원칙을 공유했다. 특히 구조 안전, 제작 현실성, 국내외 기준 충족, 중량 최적화 순으로 판단해 단순히 ‘가볍기만 한 위험한 해’를 배제했다.
라그랑주 최적화, 횡비틂좌굴 기반 최소 폭 계산, 베이지안 최적화, 그리드 탐색이라는 네 가지 독립 기법은 모두 높이 대 폭의 비(H/B) 약 1.7~2.0을 최적 구간으로 제시했다. 최적화 결과는 특허로 연결돼 중량을 10% 이상 줄이는 파라미터(H/B, H/tw, H/tf) 범위를 정의한 20개 청구항의 출원도 완료했다.
◆ 다음 단계 : 설계와 안전을 함께 보는 ‘Site-Agent’
연구진은 이 워크플로를 현장으로 확장한 ‘Site-Agent’를 구상하고 있다. 핵심은 지금까지 별도로 관리하던 기술 판단과 안전 관리를 하나의 에이전트로 묶는 것이다. 같은 현장 데이터를 활용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판단하되, 모든 결정은 책임 기술자의 승인을 거친다.
기술 판단 측면에서 Site-Agent는 천공경·지반·띠장 조건을 바탕으로 최경량 BH단면을 선정하고 국내외 기준에 따라 응력과 좌굴을 검토한 뒤 제작시방과 발주 물량을 생성할 수 있다. 동시에 작업계획에 맞춰 안전서류와 TBM 자료를 만들고 보호구 착용, 중량물 취급, 폭염·한랭, 개구부·굴착단부·낙하물, 천공장비와 크레인 작업 등을 함께 점검한다.
안전관리 측면에서는 설계와 안전의 연결 효과도 크다. BH빔 단면이 결정되면 부재 중량과 길이가 자동으로 인양계획과 장비 작업반경, 출입통제구역 설정으로 이어진다. BH빔은 동일 길이 RH형강보다 23~32% 가벼워 인양하중도 감소한다. 설계용 최적화 엔진과 현장 안전관리가 같은 데이터를 공유하면 ‘더 가벼운 강재’와 ‘더 안전한 현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전문가 시각 | 철강업계가 읽어야 할 신호
이번 연구의 의미는 BH빔 한 종류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기준 해석과 단면 최적화, 제작시방, 특허, 안전관리를 하나의 에이전틱 워크플로로 묶으면 ‘용도 최적화 제작형강’을 보다 빠르고 기준에 맞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제도 남아 있다. 학회 자문을 거친 개정안이 KDS·KCS에 실제 반영돼야 발주 문턱을 낮출 수 있고, Site-Agent가 현장 데이터를 축적하려면 시공사·제작사·설계사 간 데이터 연계도 필요하다. 또한 AI가 만드는 안전서류와 TBM 자료는 관리감독자의 판단과 법적 책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확인을 지원하는 도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영구옹벽용 BH-Pile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강재를 ‘규격품’이 아닌 ‘설계된 솔루션’으로 공급하는 역량이 철강업계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