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따뜻함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다”- 제인 오스틴
우리는 성공을 이야기할 때 흔히 높은 연봉과 화려한 직함, 뛰어난 실적과 이름값을 떠올린다. 기업은 최고의 인재를 찾고, 학교는 최고의 성적을 요구하며, 사회는 최고의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놀랍게도 성과가 아니라 인격이다. 사람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사람이었는가로 마침내 평가받는다.
뉴욕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영국 중세 문학의 권위자 매클레인 교수를 위한 성대한 축하 자리가 있었다.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찬사가 한참 이어진 끝에, 마지막으로 한 교수가 일어서서 짧게 말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노교수는 얼굴을 붉혔고 답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평생 들어 온 어떤 찬사보다 값지고 소중하다” 그렇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입안에 도끼가 함께 생긴다고 한다. 그것을 잘 간수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 몸을 찍는다. 그것은 세치 혀를 잘못 놀리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고 어떤 상황이든지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많은 이가 성공하기 위해 애쓰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는 드물다. 성공은 눈에 보이고 박수를 받으니 쫓기 쉽다. 반면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누가 점수를 매겨 주지도 않고, 당장 쓸모를 증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흐를수록 성공의 윤곽은 희미해지는 대신 사람됨은 더욱 선명해진다.
인문학의 발견
인문학은 일찍부터 인간의 위대함을 능력이 아니라 품성에서 찾았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소유나 명성에서 구하지 않았다. 그는 좋은 성품을 꾸준히 실천하는 삶, 곧 덕(德)의 활동 속에서 인간이 번영한다고 보았다. 덕은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지 않고 반복된 선택으로 몸에 밴다. 정직한 행동이 쌓여 정직한 사람이 되고, 친절한 선택이 쌓여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동양의 공자도 같은 생각이다. 『논어』에서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다. 한 사람의 수준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가에서 드러난다는 말이다. 이익을 따지는 것이 잘못은 아니나, 이익만을 따지는 사람 곁에서는 누구도 안심하기 어렵다.
브랜드는 신뢰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는 브랜드를 중시한다. 기업에도 제품에도 브랜드가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가는 브랜드는 사람의 브랜드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화려한 이력서가 아니라 신뢰에서 만들어진다. 신뢰는 광고로 사지 못하고 오직 시간과 행동으로만 쌓인다.
직장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뛰어난 전문가가 아닌 어려운 일을 함께 풀어주고, 약속을 지키며 후배를 키우는 사람이다. 능력은 채용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인격은 존경의 이유가 된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의사 가운데 한 분인 장기려 박사는, 유명한 의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뜻의 말을 남겼다. 그는 환자가 치료비를 낼 수 없으면 몰래 병원 뒷문을 열어 보내 주었다고 하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없이 살았다. 좋은 의사는 단지 수술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환자의 두려움을 헤아리고, 한 생명을 자기 일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의술보다 먼저 사람을 향한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의사가 된다.
좋은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좋은 기업인은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며, 좋은 공무원은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다. 좋은 정치인은 권력보다 나라를 앞에 두고, 좋은 부모는 자녀를 소유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한다. 좋은 리더는 함께하는 이들이 자라도록 돕는다. 직함은 달라도 본질은 하나다. 좋은 사람이 좋은 전문가를 만든다.
지휘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음악가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음악은 손끝에서 나오기 전에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술은 연습으로 얻을 수 있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울림은 연주자의 삶에서 우러난다.
“우정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는 데 가치를 더해준다”-C.S 루이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계산은 기계가 더 빠르고, 기억은 컴퓨터가 더 정확하다. 그러나 기계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곁에 앉아 아픔을 함께 느끼는 공감,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쪽에 서는 양심, 남을 위해 기꺼이 내어 주는 희생, 그리고 상대를 마음으로 대하는 배려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선한 품성이다. 그래서 미래 사회일수록 좋은 사람의 값어치는 더 커질 것이다.
심리학 연구들의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의 성공만을 좇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돕고 살아가는 사람이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인간은 본래 홀로 서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도록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식인 올더스 헉슬리는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이 남의 유익을 위해 사는 데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은 결국 공허해지고, 타인의 삶을 밝히는 사람은 자신도 함께 빛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