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漁夫之利)는 양쪽이 싸우는데 엉뚱한 3자가 이득을 챙길 때 쓰는 고사성어이다. 두 사람 혹은 양편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고집스레 다투다가 실제 이익은 그 일과 전혀 관계없는 3자가 챙긴다는 자조적인 속담이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전국시대 각국 왕에게 자신의 정책을 써 달라고 설득하고 다닌 유세가 또는 벼슬아치들의 외교전략 등을 편찬한 ‘전국책’ 연책(燕策)의 고사에서 나온다. 조(趙)나라가 연(燕)나라를 치려 하자 소대(蘇代)가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을 찾아가 전쟁을 일으키지 말 것을 설득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민물조개가 강변에 나와 있다가 황새가 다가와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자 조개는 깜짝 놀라 입을 오므려 황새의 주둥이를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서로 버티면서 있는데, 마침 어부가 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황새와 조개를 한꺼번에 잡았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 조나라가 연나라와 전쟁을 하면 강한 진나라가 두 나라를 손쉽게 병탄할 것이라고 경고해 전쟁을 막았다는 얘기다. 동업자끼리 거의 다 된 일에 사소한 것을 가지고 내분이 일면 경쟁업체가 어부지리를 얻게 되는 것과 같다. 지금도 이 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중국은 미국의 대두(콩) 구매에 최대 고객이었다. 해마다 엄청난 미국산 대두가 중국으로 수출됐다. 하지만 트럼프와 시진핑의 자존심이 걸린 무역전쟁으로 미국산 대두 수출이 타격을 받았다. “대두가 너희 나라만 있냐”며 중국은 수입처를 브라질로 변경했다. 두 나라 싸움에 브라질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브라질은 지난해 약 440억 달러 대두를 수출했다 이 중 약 4분의 3이 중국으로 향했다. 이 같은 상황을 접한 미국 농부들은 망연자실하며 트럼프에 대한 원망이 컸다.
이 같은 사례를 철강에서 찾는다. 국내 시장이 중국과 일본산 저가 열연강판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산과 터무니없는 가격 차이에 수요가들이 자주 찾는 단골 제품이 되었다. 당연히 국내 생산업체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장 왜곡은 심화했고 수익도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수요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생산업체는 반덤핑 제소를 망설였다. 수입재를 찾는 업체들도 국산을 같이 찾는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민하며 가격 정상화를 고대했다. 그러나 상황을 더욱 악화했다.
이에 현대제철은 저렴한 일본과 중국산 열연강판으로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무역위원회에 반덤핑 제소를 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이유를 들어보면 한편으로 수긍이 가는 점도 있다. 국내 유통가격이 톤당 90만 원에 형성되어도 중국산이 78만 원에 들어왔다는 얘기가 돌면 국내 유통가격도 78만 원으로 낮아진다는 것이 초점이었다. 이에 무역위는 현대제철의 주장을 받아들여 3월 4일부터 예비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7월 23일 일본산 31.58∼33.57%, 중국산 28.16∼33.1% 잠정관세를 확정했다.
반덤핑을 제소한 생산업체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열연강판은 중간재이다. 이 중간재를 가지고 완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많다. 당연히 두 업계 간 이해관계가 상충(相衝)한다. 완제품을 만드는 철강사들은 원가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를 걱정했다.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입재 선택지까지 사라진다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보다 미국 철강 관세 부과 등 업계 공통 사안에 더 집중해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생산업체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입시장을 점유했던 두 나라 물량이 감소하면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믿었던 생산업체들의 바람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나라의 물량이 급감하자 대만산이 그 공백을 빠르게 메우며 새로운 공급원으로 부상한 것이다. 철강협회 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열연강판 수입은 13만 톤이었다. 이 중 일본산은 38%, 중국산은 89%나 급감했다. 반면 대만산은 2,600% 이상 늘었다. 여기에 베트남, 인도네시아산도 가세하고 있다. 중국산과 일본산에 대한 반덤핑 규제 틈을 타 ‘어부지리’ 혜택을 본 것이다.
변칙적 수입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다. 세밀한 검증이 뒤따르지 않으면 시장 왜곡은 잡히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산은 중국 자본과 원료를 활용해 생산하는 사례가 많다. 무늬만 인도네시아산이지 실질적으로 중국산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후판의 사례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꼼수 수출도 비상이다. 과거 중국 메이커들이 관세 회피를 위해 일반 제품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성분을 섞어 열연강판을 특수강으로 위조하는 사례도 있었다. 편법 수입을 방조하면 시장 정상화는 요원하다.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어부지리를 부추기는 데가 있다. 열연강판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수요 업체이다. 그들이 수입재를 사용한다고 돌을 던질 수 없다. 기업의 목적은 수익 창출이다. 이것에 충실하려면 당연히 값싼 소제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국산이든 수입재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이해관계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등 업계 공통 사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주장이기도 하다. 동업자 관점에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수요가의 선택이 국산보다 수입재에 이익이 간다면 국내 철강 생태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