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저 요즘 자괴감이 들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삼성전자 얘기를 꺼냈다. 노조 파업 끝에 얻은 수억대 성과급 이야기다. 자기랑 비교해 보니 씁쓸하더라고. 그런데 더 마음이 무거운 건, 이게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후배는 틀리지 않았다. 틀리기는커녕, 아주 정확하게 이 시대를 읽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부가 이동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AI다. 더 정확하게는, AI에 끈이라도 닿아 있는 사람과 기업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2026년 약 9,75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2025년 22%, 2026년 26% 성장이다. 숫자가 크다 보니 실감이 안 날 수 있다. 2024년 7,750억 달러이던 반도체 시장이 2030년에는 1조 6,000억 달러가 된다. 6년 만에 두 배 이상 커진다는 얘기다.
엔비디아(NVIDIA) 한 회사가 2025년에만 매출 1,250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한 기업이 됐다. 점유율이 78%다. 세계에서 AI를 훈련하는 컴퓨터 열 대 중 여덟 대가 NVIDIA 칩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삼성, 현대자동차 회장과 작년 10월에 ‘깐부회동’을 하더니, 이번 6월 5일에는 SK, LG, 네이버 회장과 삼겹살 회식을 하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는 어떤가. 10년 안에 4배로 성장할 전망이다. 코위브(CoreWeave)라는 회사는 2025년 3분기에만 전년 대비 300% 성장한 19억 달러 매출을 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이 앞다투어 데이터센터에 수십조 원씩 쏟아붓고 있다.
헬스케어도, 금융도 마찬가지다. 금융 분야는 AI 인프라 매출 비중이 전 산업 중 1위다. 실시간 사기 탐지 시스템 하나가 연간 5,000억 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하고 있다.
이 숫자들이 무엇을 말하는 건가? 부의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조용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예전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성실하게 일하면 됐다. 열심히 하면 월급이 오르고, 연차가 쌓이면 대우를 받았다. 그 공식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가 속한 산업이 AI와 멀리 있으면 그 성실함을 보상받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반대로, AI와 조금이라도 닿아 있으면, 그 과실이 떨어진다.
후배가 느낀 자괴감이 바로 이것이다. 그 친구는 게을렀던 게 아니다. 잘못 산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이 격변의 시대에, 파도가 오는 쪽과 가는 쪽 중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조건 AI 업종으로 이직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단순한 답이고, 쉽게 가능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이렇게 묻고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AI와 연결되는 접점이 있는가?
2026년,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문서 처리, 고객 지원, 운영 자동화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혼합된 새로운 업무 구조가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 흐름에서 AI를 부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AI에게 밀려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 갈림길에 모두가 서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의 성과급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그 씁쓸함을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부러움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자괴감은 변화를 촉구하는 신호다.
